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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초코칩66 0 1
답사일: 2026년 8월 15일​ 이제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가 있는 법성면으로 향합니다. 법성면에서는 '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와 '영광 법성진성', '영광 법성진 숲쟁이'를 찾았습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법성면 입암리17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숲쟁이길 56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법성면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623-2 '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는 입암마을 노인정 옆에 있는 쉼터로 이용되는 정자 옆에 자리하고 있고, 비각 앞쪽으로 제법 널찍한 공터가 있습니다. 마을 주택 사이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길이 좁다는 건 감안을 해야 합니다. ​ 아무튼 조금은 편하게 차를 세워두고 매향비를 둘러봅니다. '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는 보호각 안에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다가가서 매향비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이 매향비는 조금 특이하게 고려 말 공민왕 때 매향을 했던 기록과 조선 태종 때 매향을 했던 기록이 하나의 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 (靈光法聖笠巖里埋香碑, 전남광주통합광역시 기념물, 수량: 1기, 시대: 고려~조선시대(1371년, 1410년), 지정일: 2004. 9.20.)​【설명】​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는 고려말기(1371년, 고려 공민왕 20,洪武 4)와 조선시대 초기(1410년, 태종 10 永樂 8)에 걸쳐 한 비석에 2회의 매향 사실을 기록한 매향비다.​매향(埋香)이란 향나무(香木)을 묻는 민간불교 신앙의례이다. 향나무를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지역에 오래 묻었다가 약재나 불교의식용들로 썼으며, 그 매향의 시기와 장소, 관련 인물들을 기록한 것이 매향비(또는 암각)이다.​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는 현재 입암리 입정마을 노인정 옆에 있는데, 1985년 농지 정리사업을 하다가 하수구 정비 중 발견되었고, 1987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입정마을은 바다와 연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무렵에 제방을 축조하여 현재는 주변이 들판으로 되어 있다. 이 비석이 서 있던 골목을 '빗독거리'라 불렀다 하는데, 그 마을 앞까지 옛날에 해수가 들어 왔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주민들은 그것이 배를 매는 계선주(繫船柱)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법성포 조창이 형성되기 이전의 고법성 지역이 이곳과 연관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진량면(陳良面)에 속한 지역으로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진량면27개 마을 가운데 하나로 '입암동(笠巖洞)'으로 기록되어 있다.​이 석비는 사각 석주형의 자연석을 세워놓은 입석 형태인데,「홍무사년명(洪武四年銘)」비면은 세로 높이 120cm, 가로 폭이 40cm이며 비면의 형태가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모습이다. 이 비는 1371년(고려 공민왕 20) 4월에 세운 것으로 매향의 위치는 동쪽으로 200보(步)이고, 화주가 기록되어 있다. 간략한 내용이고 판독되지 않은 글자도 있지만, 매향의 시기, 장소, 방향, 참여자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영락팔년명(永樂八年銘)」비면의 크기는 세로 높이 120cm, 가로 폭이 35cm의 방형으로 정면의 표면은 비교적 고르다. 글자 수가 비면에 비해 많은 편으로 글자의 크기가 작고 서로 붙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1410년 10월 남향 200보(步) 거리에 매향비를 세운 것이며, 참여한 사람과 시주자의 인명을 적고 있다.​영광 법성 매향비는 고려시대 말기와 조선시대 초기에 걸쳐 39년의 사이를 두고 2회의 매향사실을 기록한 비이다. 한 비석에 시기를 두고 2회의 매향 사례를 한 매향비로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과 매향의 연대, 장소, 참여자 들의 기록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국가유산포털에서(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영광법성입암리매향비 (靈光法聖笠巖里埋香碑) |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 검색), 2026년 9월 29일 접속 비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보이는 면에 글자가 빼곡히 쓰여 있는 데, 이 앞면에 새겨진 기록은 조선 태종 때 매향을 했던 기록이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 탓도 있고 한자를 모르는 제 눈으로 보아서는 어떤 글자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데, 국가유산 지식이음 금석문 검색 '영광법성입암리매향비'(금석문 검색 - 국가유산 지식이음)로 들어가 보면 이 매향비에 새겨진 글자를 판독한 내용과 함께 해석문도 볼 수 있습니다. 국가유산 sites 지식이음의 판독문을 보면 오랜 세월의 풍화로 인해서 모든 글자를 정확히 판독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永樂八年庚寅八月 ▨ 向二百步埋香碑 ▨結▨香徒棟梁韓公▨ ▨ ▨ ▨施主加勿▨南▨ ▨ ▨ ▨ ▨ ▨ ▨金生漢拾節​영락(永樂) 8년(태종 10, 1410년) 8월, 200보 떨어진 곳에 매향비(埋香碑)를 세웠다. 결▨향도(結▨香徒) 동량(棟梁) 한공▨▨(韓公▨▨) ▨▨시주(▨▨施主) 가물(加勿) ▨남▨(▨南▨) ▨▨▨▨▨▨金生漢拾節​[출처] 국가유산 지식이음 금석문 검색 '영광법성리입암리매향비'판독문 및 해석문(금석문검색 - 판독문/해석문 비교보기)에서​​ 비각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비문이 보입니다. 역시나 제 한자 실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글자가 많이 마모가 되어 있기도 하고, 원래 새겨져 있던 글자 위에 현대에 들어서서 누군가가 한글로 무언가 글자를 새겨 놓은 모습도 겹쳐서 보입니다. 오른쪽 면에 있는 글자도 국가유산 지식이음 금석문 검색 '영광법성입암리매향비'(금석문 검색 - 국가유산 지식이음)을 통해서 해석문과 판독문을 확인해 봅니다. ​洪武四年四月 ▨ ▨ 東二百步埋香化主 ▨ ▨ 化主 ▨ ▨ ▨ 徒 ▨ ▨ ▨​홍무(洪武) 4년(공민왕 20, 1371) 4월. 동쪽으로 200보(步)에 매향(埋香)하였다. 화주(化主)는 ▨▨ ▨도 ▨▨▨​[출처] 국가유산 지식이음 금석문 검색 '영광법성리입암리매향비'판독문 및 해석문(금석문검색 - 판독문/해석문 비교보기)에서​ 이 매향비의 뒷면에도 누군가가 글자를 새겨진 흔적이 보이고... 새마을이라는 글자가 어렴풋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광복 이후에 누군가가 이 비석에 글을 새겼었나 봅니다. 그런 와중에도 비석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좌측면에는 아무런 글자가 보이지 않고 그냥 깨끗합니다. 매향비라는 것이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어떤 이유에서 매향을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검색을 해 보니, 매향은 불교에서 최고급 향이라고 하는 침향을 얻기 위해서 매향을 한 것이고 이러한 행동은 미륵불이 다스리는 미륵 정토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소원을 빌기 위한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원을 비는 행위에도 왜구가 연결된다는 점이 좀 뜻밖이었습니다. ​내용​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매향비는 5종이 있다. 연대순으로 보면 1309년(충선왕 1)에 세운 고성삼일포매향비(高城三日浦埋香碑)와 1335년(충숙왕 복위 4)에 세운 정주매향비(定州埋香碑), 1387년(우왕 13)에 세운 사천매향비(泗川埋香碑), 1405년(태종 5)에 세운 암태도매향비(巖泰島埋香碑), 1427년(세종 9)에 세운 해미매향비(海美埋香碑) 등이다.​매향은 향을 오랫동안 땅에 묻어 침향을 만드는 것이다. 향을 오랫동안 땅에 묻어 두면 보다 단단해지고 굳어져서 물에 넣으면 가라앉게 되기 때문에 침향이라고 하며, 그 향을 불교에서는 으뜸가는 향으로 삼고 있다.​이와 같이 매향은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 근거한 신앙형태로, 향을 묻는 것을 매개체로 하여 발원자가 미륵불과 연결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즉, 미륵불이 용화세계(龍華世界)에서 성불하여 수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때 그 나라에 태어나서 미륵불의 교화를 받아 미륵의 정토에서 살겠다는 소원을 담고 있으며, 이와 같은 소원을 기록한 것이 매향비이다.​발견된 매향비는 모두 바닷물이 유입하는 내만(內灣)이나 첩입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불가(佛家)에 전하고 있는 매향의 최적지가 산곡수(山谷水)와 해수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의의와 평가​현재 남아 있는 매향비를 통해 볼 때 매향 주도 집단으로서 매향 발원자들을 결속시킨 조직체로는 보(寶) · 결계(結契) · 향도(香徒) 등이 있고, 이들은 승려보다는 일반 민중이 중심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는 매향지의 민중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적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구원받는 방법으로서 미륵신앙과 접합된 매향을 택했던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들 매향비가 모두 14, 15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 왜구의 침략이 많았던 해변지역의 불안과 민심을 매향을 통하여 치유하려 했음을 살필 수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매향비'(매향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입정동 하수구 추천 정보 자료 중에서, 집필자 김상현(한국교원대학교, 한국사), 2026년 9월 29일 접속​ 매향비가 많이 발견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2026년 9월 기준으로 몇 기의 매향비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지 궁금해져서 국가유산포털을 검색해 봤습니다. 지금 확인을 한 '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를 포함해서 매향과 관련된 비석이나 암각이 모두 12기가 검색이 됩니다. ​ '사천 흥사리 매향비'(보물),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보물), '삼천포 매향 암각'(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해남 맹진리 암각 매향비'(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예산 효교리 매향비'(충청남도 기념물),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충청남도 기념물), '신안 암태도 송곡리 매향비'(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영암 채지리 매향비'(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문화유산자료), '장흥 덕암리 암각 매향명'(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문화유산자료).​ 12곳의 매향 문화유산 중에서 몇 곳을 직접 찾아가 봤는지도 궁금해서 제 블로그에서도 검색을 해 봤습니다. ​ 2018년 10월에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당진 안국사지 : 네이버 블로그), 2021년 11월에 '장흥 덕암리 암각 매향명'(장흥군 -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 장흥 월송리.. : 네이버블로그), 2022년 8월에 '사천 흥사리 매향비'(사천시 - 성내리 비자나무, 우산 봉수대, 곤.. : 네이버블로그), 2022년 10월에 '신안 암태도 송곡리 매향비'(신안군 - 암태도 송곡리 매향비, 안읍리 삼층.. : 네이버블로그), 2024년 3월에 '예산 효고리 매향비'(예산군 - 예산 효교리 매향비, 예산 화전리 .. : 네이버블로그) 그리고 이번에 '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까지 모두 6곳의 매향비를 찼아 갔었습니다. ​ 많이도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못 가본 곳이 이렇게나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를 둘러보고 법성포로 향합니다. 쉽게 표현해서 법성포라고 하기는 하지만 행정구역 상으로는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입니다. 법성포에서는 '영광 법성진성'과 '영광 법성진 숲쟁이'를 둘러보려고 하는데, 일단 숲쟁이 꽃동산 주차장을 찾아서 차를 세워두고 주변을 살펴보면 법성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법성사를 지나서 법성사 뒤편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법성진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안내판과 함께 법성진성을 표현한 조형물이 보입니다. 법성진성 조형물을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가면 왼편으로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는 길이 보이고... 풀들이 많이 자라서 이 길이 맞나 싶기는 하지만 등산 동호회에서 묶어 놓은 것으로 보이는 리본도 보이고 해서 왼쪽 숲길로 걸어 들어갑니다. 풀이 많이 자란 길을 잠시 걸으면 숲쟁이 공원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함께 '영광 법성진성'안내판을 만나게 됩니다. 안내판을 보면 법성진성에 대한 설명도 확인할 수 있지만 현재의 법성진성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과 함께 옛 지도에 표시된 법성진성의 모습도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영광 법성진성 (靈光法聖鎭城,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면적: 15,970㎡, 시대: 1514, 지정일: 2002.11.27.)​【설명】​영광 법성진성은 남쪽으로 바다와 접한 구릉의 남사면에 있으며, 평면상 직사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 1,688척, 높이 12척으로, 『동국여지지』에는 둘레 1,688척으로, 〈법성진진지(法聖鎭鎭誌)〉에는 둘레 3,062척, 높이는 8척 7촌으로 기록되어 있다.​법성진성은 돌로 쌓은 석성으로, 동―서 너비 약 200m, 잔존 최대높이 300㎝ 내외, 성벽의 너비 700㎝ 내외의 규모이다. 남벽이 모두 파괴되어 남―북의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서의 길이는 250m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길이는 동벽 75m, 북벽 250m, 서벽 125m, 남벽 10m로 총길이는 460m인데 밖으로 안전한 입정동 하수구 방법 돌출된 치부분을 포함하면 더 길어진다. 성벽은 외벽을 돌을 쌓아 올리고 그 안쪽으로는 잡석과 흙을 섞어 채워 넣은 형태이다.​법성진성의 성벽은 잔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동벽은 북쪽의 성벽이 잘 남아 있으며, 동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부분은 광주이동통신 중계탑이 설치되면서 파괴되었다. 북벽은 대부분 흙으로 덮여 있는데, 북벽의 중간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지점에 반원형을 이루면서 돌출된 치(雉)가 설치되어 있다. 서벽은 남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서벽의 중간지점에는 문터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고 이 문터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각각 치가 설치되어 있다.​성 안에서 출토된 기와류·자기류·토기류 등의 유물이 모두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인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 사용된 성으로 추정된다.​한편 성벽에는 성을 쌓기 위해 동원된 전라도 관내의 군현명과 쌓은 척(尺), 그리고 감관(監官)·도색(都色)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글에 나타난 내용으로 보아 인원 동원은 물론 성의 축조와 관련한 당시의 제도 등을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로 판단된다.​법성진성은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성벽에 새겨진 글 등 조선시대 진성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국가유산포털에서(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영광법성진성 (靈光法聖鎭城) |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 검색), 2026년 9월 29일 접속 안내판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성벽이 일부 보이기도 하고 길이 잘 포장되어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만, 이쪽 방향으로 향하지 않고... 왼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덱으로 만든 길과 함께 전망대가 보입니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법성리의 모습을 내려다봅니다. 이곳에서 바다가 그리 멀지는 않지만 지금은 썰물이라서 그런 것인지 법성리 뒤편으로 작은 물길이 이어져 있는 모습만 보입니다. 아마도 밀물이 되면 법성리 앞까지 물이 가득 차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곳 법성포가 지금은 굴비로 유명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수군통제부를 두었을 만큼 군사적인 요충이면서 세금을 거둔 쌀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중요한 조운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영광군 북부 해안가에 위치하여 국방상ㆍ교통상 중요한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는 1514년(중종 9) 법성포에 진(鎭)을 설치하고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었다가, 1708년(숙종 34) 첨사(僉使)로 승격시켜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를 1명 배치하고 관할하도록 하였다. 1514년 진성(鎭城)을 쌓았는데 그 둘레가 1,688척(尺)이었다. 법성포는 조선 말기까지도 수군통제부를 설치하는 등 국방상 중요한 지역이었다.​또한, 법성창(法聖倉)을 설치하여 조운(遭運)에 이용하였다. 조선 중종 때에 나주의 영산창(榮山倉)은 수로가 험하여 배가 전복되는 등 손실이 많다고 하여 법성포에 창고를 짓고 영산창에서 맡아 거두던 전세(田稅)와 대동미를 거두게 하였다. 따라서 법성창은 주변 12개 지역의 전세와 대동미를 거두어 서울로 운송하는 구실을 담당하였다. 물자의 드나듦에 대하여는 법성첨사(法聖僉使)가 있어 계량(計量)을 감독하였다.​현재는 토사가 쌓여 항구로서의 기능은 많이 쇠퇴하였으나 조기의 어획으로 인한 어항으로서의 기능은 아직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영광군의 정기시장이 법성포가 있던 지역에서 개시되므로 주변지역에 대하여 시장중심지로서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행정상으로 법성포는 조선시대에 영광군에 속하였으며, 고종 때에 전국을 13개도로 분리할 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진량면에 속하였다가 현재는 법성면에 속하여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법성포'(법성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 중에서, 2026년 9월 29일 접속​ 법성포의 모습을 잠시 감상을 하고...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왼편 방향으로 덱 이 깔려있는 길을 따라가면서 성벽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 지금은 성벽을 보수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성벽의 면석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기면서 복원공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정말 공을 많이 들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공을 들이는 복원공사이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인가 봅니다. 덕분에 면석 안쪽에 작은 돌들을 가득 채워서 성벽을 만들었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성벽 위에도 나무들이 자라고 있은 모습도 보이고, 치의 모습도 확인을 하면서 계속 걸어갑니다. 성벽 sites 위에서 자라고 있는 커다란 나무 두 그루를 지나면... 법성진성의 동벽이 있는 곳과 숲쟁이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됩니다. 동벽을 따라가볼까도 생각을 했지만 동벽 앞에 가보니... 나무와 풀들이 잔뜩 자라있고...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동벽의 모습만 잠깐 확인을 하고 숲쟁이로 가는 길을 택해서 내려가기로 합니다. 잘 자란 나무들 사이로 나무 계단이 이어지는데 그 좌우로 커다란 나무들이 산기슭은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곳이 '영광 법성진 숲쟁이'입니다. 영광 법성진 숲쟁이 (靈光 法聖鎭 숲쟁이, 명승, 면적: 27,397㎡, 지정일: 2007. 2. 1.)​【안내판 설명】​법성진은 법성 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해안가에 축조한 군사시설을 말하며, 숲쟁이는 법성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인공 숲이다. ‘쟁이’는 ‘성’이란 뜻으로 ‘숲쟁이’는 곧 숲으로 된 성을 의미한다. ​법성진 숲쟁이는 조선 중종 9년(1514) 법성진성을 축조할 때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무들은 법성 진성의 북벽과 연장해 동쪽으로 이어져 있는데, 포구와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防風林)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자연적인 아름다움도 더했다. 길이는 법성에서 홍농으로 넘어가는 산허리 능선을 따라 약 300m에 이르며, 종류는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다수를 차지한다. ​법성진 숲쟁이는 수목, 법성 진성, 법성 포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법성포 단오제 등 각종 민속 행사가 열리고 있어 역사·문화사적 가치 또한 매우 뛰어난 명승지이다.​-국가유산포털에서(명승 영광 법성진 숲쟁이 (靈光 法聖鎭 숲쟁이) |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 검색), 2026년 9월 29일 접속 '영광 법성진 숲쟁이는 넓은 면적으로 펼쳐져 있는데, 이곳 뒤편에 있는 도로를 건서도 숲쟁이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검색해 보니 도로를 새로 내면서 숲쟁이 가운데를 통과하게 되어서 두 곳으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도로 위를 지나는 구름다리를 놓아서 두 숲을 연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용​영광 법성진 숲쟁이는 법성포와 법성진성(法聖鎭城) 및 성 위에 조성된 숲을 이른다. 이는 법성포에서 흥농 방향으로 연결된 842번 지방도의 고개마루 좌우 측 산 능선을 따라 법성리와 진내리에 걸쳐 있다. 2007년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숲쟁이의 쟁이는 성(城)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숲쟁이는 일정한 규모로 조성된 숲을 의미하며, 다른 의미로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마을숲에 대한 명칭인 숲정이의 방언으로 보기도 한다.​현황​법성포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대표적인 항구로, 칠산 앞바다에서 들어오는 조기배로 파시를 이루었던 곳이다. 예로부터 파시로 몰려드는 보부상들이 이 숲에서 단오행사를 개최하였다고 한다.​법성포의 산세는 인의산(157m)에서 시작되어 좌측 능선은 남측의 대덕산(240m) 방향으로 이어지고, 서측 능선은 진내리 방향으로 뻗어 내린다. 진내리 방향으로 인의산의 자연림이 끝나는 남쪽 부분에서 시작되는 숲쟁이는 지방도가 가로지르는 부분까지 완만한 하향 경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또 도로 건너편으로 연결되어 오르막 경사로 이루어진 산 능선을 따라 길게 숲이 조성되어 있다.​숲쟁이는 본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데, 지방도가 개설되면서 2개로 나뉘었다. 현재는 도로 위로 두 개의 숲을 연결하는 다리인 부용교가 놓여 있 다. 숲에는 3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중심을 이루면서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광 법성진 숲쟁이'(영광 법성진 숲쟁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 중에서, 집필자 김학범, 2026년 9월 29일 접속​ 숲쟁이를 둘러보고 왔던 길을 되짚어서 돌아가지 않고 마을길을 따라서 법성사가 있는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이곳에 법성진성의 건물이 있었던 자리임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민가들이 들어서 있어서 그 흔적마저도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저 안내판을 통해서 이곳에 관아 건물들이 있었다는 것만 확인을 했습니다. 조금 더 마을길을 따라가며 오른쪽으로 성벽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 성벽을 따라가면 처음에 안내판을 보았던 곳으로 가게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만... 계속해서 직진을 합니다. 이내 법성사 뒤 담장과 함께 처음에 보았던 상세정보 확인 법성진성 조형물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기까지 '영광 법성진성'과 '영광 법성진 숲쟁이'를 천천히 둘러보았고... 여름 더위에 지치기도 해서 영광에서의 일정은 여기까지로 하고, 쉽게 오기 힘든 법성포에 왔으니 법성리로 내려가서 굴비를 사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법성면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지만 법성면에서도 가보지 못한 곳들이 있습니다. '영광 월산리 월계고분군'과 '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인데... 이 두 곳에 대해서는 국가유산포털의 이미지와 설명을 확인하면서 영광군에서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법성면 월산리에 있는 '영광 월산리 월계고분군'(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영광 월산리 월계고분군 -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포털(국가유산이미지 | 영광 월산리 월계고분군(전경)20120510유성원)영광 월산리 월계고분군 (靈光月山里月桂古墳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수량: 2기, 지정일: 2001. 9.27)​【설명】​월계 마을 북서쪽에 있는 초포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의 해발 20m 내외의 구릉 능선상에 있는 2기의 고분이다. 1호분의 평면은 네모난 모양과 둥근 형태를 모두 가지고 있는 장고분이고 2호분은 평면형태가 둥근 원형이다.​1호분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완만하게 내려오는 구릉의 능선상에 있는데 구릉 위쪽에 네모난 부분을 두고 있다. 둥근 부분의 남동쪽은 민묘 등으로 인하여 약간 변형되었고 네모난 부분의 북서쪽은 길이 생기면서 훼손되었다. 2호분은 둥근 형태를 하고 있는 원분으로 1호분의 남동쪽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1호분은 오랜 세월 동안 그 형태가 다소 변형되기는 했지만 장고분의 형태가 뚜렷하고 2호분은 부근에 돌들이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하여 석실분일 가능성이 높다.​-국가유산포털에서(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영광월산리월계고분군 (靈光月山里月桂古墳群) |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 검색), 2026년 9월 29일 접속​ 법성면 법성리에 있는 '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국가등록문화유산)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 -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포털(국가유산이미지 | 전경)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 -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포털(국가유산이미지 | 정면)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 (靈光 法聖里 日本式 旅館, 국가등록문화유산, 수량: 1동, 시대: 1931, 지정일: 2004.12.31.)​【안내판 설명】​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여관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 법성포 일대가 개항지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많이 드나들게 되고, 이들이 묵을 여관도 많이 들어섰다. 이 건물은 1931년에 건립한 것으로 법성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식 여관이다. ​벽면은 외*흙벽을 바르기 위해 벽 속에 엮은 나뭇가지를 엮어 중심을 잡은 후 흙으로 얇게 바르고, 외벽은 얇은 판자를 사용하여 비늘 모양으로 마감했다. 내부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두 층을 목조 계단으로 연결하였다. 1층에는 방 셋과 욕실, 화장실, 창고 등이 있고, 2층에는 왜돗자리(다다미)방 둘과 이들 방을 ‘ㄱ’자형으로 감고 돌아가는 좁은 복도가 있다. 지붕은 원래 일본식 기와였으나 지금은 골 슬레이트로 교체하였다. ​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은 외형뿐만 아니라 내부 또한 일본식 여관의 평면 특성이 예전 그대로 남아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외: 흙벽을 바르기 위해 벽 속에 엮은 나뭇가지​-국가유산포털에서(국가등록문화유산 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 (靈光 法聖里 日本式 旅館) |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 검색), 2026년 9월 29일 접속​​​​​​​​​​​※ 이 글에서 확인한 문화유산(영광군 법성면)[명승] 영광 법성진 숲쟁이[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영광 법성진성[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영광 법성 입암리 매향비[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 영광 월산리 월계고분군[국가등록문화유산] 영광 법성리 일본식 여관​​​ 본 블로그에 게시된 출처가 표시되지 않은 모든 사진 및 이미지는 직접 촬영/제작한 저작물입니다. 직접 촬영/제작한 이미지의 무단 도용, 복제, 편집, 2차 가공을 금지하며, 상업적 이용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출처가 표시된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각 원작자의 권리에 속하며 본 블로그에서는 제3자 이미지 재사용 권한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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